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인데요. 제 마음속에 자꾸 집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어 고민이 되요. 소위 어른들이 얘기하는 가출이죠.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그래서는 안될 것 같지만 친구들과 같이 집을 떠나 있으면 재미있고 즐거울 것 같아 자꾸 마음이 안 잡혀요. 사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요, 제가 이번 2학년 초에 지방에서 전학을 왔거든요. 지방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자꾸 돌아다닌다고 엄마가 서울로 전학을 시켰는데 이전의 행동이 갑자기 달라질 리가 있겠어요? 여기 서울은 친한 친구도 거의 없고, 애들도 모두 깍쟁이 같고, 그러다 보니 옛날 친구들과 만나고 싶고 걔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만 들어요. 부모님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자꾸 공부하라고 야단만 하고 정말 답답해 죽겠어요. 정말 집을 나가면 안될까요? 왠지 안 해본 생활이니까 기대도 되고, 정말 자유로울 것 같아요. 우리끼리만 있으니까요.
가출하고 싶어요!
[간략정보]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갑자기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와서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가 봅니다. 마음 한편에서는 힘든 현실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다른 한켠에서는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는 소리도 들려 여간 혼란스러운게 아닌 것 같네요. 그러나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뭔가 다른 현명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민을 하고, 또 이렇게 용기를 내어 상담을 신청한 것을 보니 의지가 굳은 학생으로 느껴집니다. 우리 나라의 청소년들 과반수 이상이 한 번 이상 가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하니 **님의 가출 생각도 놀랄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가출 생각을 한 청소년들이 모두 집을 박차고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많은 청소년들이 여러 위기 속에서도 중심을 가지고 잘 극복하고 있듯이 **님도 이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이렇게 **님이 가출을 할 생각이 절실한 것은 세 가지 문제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님과 상의 없이 전학을 시킨 부모님에 대해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점, 전학을 하고 보니 낮선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려워서 현실을 피하고 싶은 심리의 작용, 그리고 가출을 하면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며 뭔가 새롭고 굉장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지요. **님 말처럼 이전의 행동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도 아닌데 부모님이 너무 **님 입장을 생각지 못하고 전학을 시킨 것 같네요. 당연히 **님은 부모님에게 화가 나고 학교가 무조건 싫어지고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 지요? 그러나 **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부모님의 뜻을 헤아리는 마음이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마냥 엇나가서 부모님을 속상하게 해드린다고 **님 마음이 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섭섭했던 마음이 있었다면 부모님께 솔직하게 말씀을 드려보고 좋은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른 하나는 시골에서 올라온 나를 친구들이 받아줄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있어서 **님이 학교 적응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서울 학생들이 무조건 타인을 배척하거나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이전에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했던 경험이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님 스스로가 마음을 여는 일만 남았네요.
마지막으로 **님이 가출은 곧 자유의 보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가출을 하면 어른들의 간섭이 없어져서 얼마나 자유롭고 즐거울쏘냐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 가출 경험을 한 청소년들을 만나보면 가출은 또다른 구속이고 고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는 먹고 자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을뿐더러 사회가 청소년들을 감싸안고 보호할 수 있는 만큼 그렇게 안전하지 못한 것이지요. 청소년들을 착취하고 이용하는 그늘진 곳이 사회 곳곳에 널려 있어 어떤불행한 길로 빠질 지 모르는 일입니다. 경험을 해봐야 이런 위험성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사람이랍니다.
**님을 믿고 기대하는 부모님이 계시다는 점, 이전에 친구들과 잘 사귄 경험이 있다는 점, 자신을 함부로 하지 않는 절제력이 있다는 점등이 지금의 위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믿고 한번 새로운 환경에 도전해보면 어떨까요? **님에게 많은 기회와 가능성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쥐는 것은 **님 몫이랍니다.
[상세정보]
간략정보에 이어 상세정보에서는 가출을 하고 싶어하는 **님의 마음을 좀더 찬찬히 살펴보았으면 하네요. 앞서 언급한대로 **님이 가출에 대한 유혹을 많이 느끼는 이유는 대체로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는 일방적으로 **님을 전학시킨 부모님의 뜻에 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 둘째는 전학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방황을 하고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가출이 지금의 어려움을 모두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전학은 어느 누구에게나 적응의 어려움이라는 과제를 안겨주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하물며 **님의 경우는 부모님이 거의 일방적으로 주거와 학교를 옮겨주셨으니 다른 사람보다 더욱더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상황을 만든 부모님이 야속하고, 부모님께 반항하고 싶고, 부모님을 속상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기에는 부모님을 비롯한 권위적 인물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항이 하고 싶어지고, 또래 친구들이 매우 의미가 있어지는 시기이지요. 부모님은 자신을 통제하고 간섭하는 대상이지만 친구들은 내 말에 귀기울여 주고, 내가 힘들 때 같이 힘들어해 줄 수 있는 존재로 생각이 되니까요. 청소년기의 이런 특성과 중첩되어 **님에게 닥친 상황이 **님을 자꾸 집밖으로 내몰고 있는 것 같네요.
그러나 **님이 부모님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어떻게 해서 전학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극적으로 어떤 목적을 가진 전학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꿈을 저버린 채 친구들 속에서 방황을 하는 **님을 그냥 볼 수가 없지는 않았을까요? 부모님이 안심할 수 있을 만큼 친구관계를 조절하고, 절제를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요? **님이 얘기한 것처럼 **님과 충분한 상의 하에 이 일이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으나 **님의 그간 행동도 한 번 점검해보는 균형 잡힌 마음이 필요할 것 같네요.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 전 이번 일에 대한 서운함을 부모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려 부모님께 **님 마음에 대한 배려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드려보면 어떨까요?
다음은 친구들과의 새로운 적응에 대해서입니다. 서울 애들은 괜히 깍쟁이 인 것 같고, 시골 출신인 나를 깔볼 것 같고, 도무지 정이 가지 않으니 더욱더 **님 마음이 학교 생활에 냉냉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친구들에 대한 이러한 마음은 **님의 섣부른 선입견일 수 있답니다. 누구나 낯선 사람을 대하면 처음에는 서먹하고 가까워지는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지요. 그런 점에서 **님이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친구들에게 다가가면 기꺼이 **님을 맞아주는 친구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님이 마음을 주지 않으니 새 학교 친구들도 **님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회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랍니다.
끝으로 **님이 가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부모님의 짜증스런 간섭을 떠나 친구들과 오붓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짜릿하고 즐거운 일이지요.
그러나 가출은 **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와 즐거움을 주지 않습니다. 또다른 구속이 **님을 기다리고 있지요. 지금까지는 먹고 자는 것과 관련된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이 되었지만 가출 순간부터는 이런 문제가 바로 직접적인 어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으나 청소년들이 들어갈 수 있는 일자리는 제한되어 있을뿐더러 청소년들의 노동력을 옳지 않은 방식으로 이용하려는 그늘진 생각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도 많이 있으니만큼 여간 조심해야 할 것이 아니지요.
사회가 **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호의적인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여학생에게는 더욱더 위험한 일이 많습니다. 자유를 보장할 것같은 환상으로 거리에 나섰다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의 길을 가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출의 어려움은 체험으로 알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가출을 했던 많은 청소년들의 체험을 들어보면 집에 있을 때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다시는 가출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요.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입니다.
**님은 이전에 친구들과 잘 지낸 경험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여는 용기만 남아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부모님 마음을 상하게 해야 **님의 힘든 점을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 동안 힘들었던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아 보십시오. 의외로 부모님이 따뜻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자유는 누군가가 없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 한 후에 주어지는 법입니다. 그 멋진 자유를 위해 현실에서 자신이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실천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힘내십시오! [서울시청소년종합상담실 손진희 선생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