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어쩌면 좋죠? 저희 아버지가 실직하셨어요. 오랫동안 열심히 일하시던 직장인데.. 집 분위기 많이 달라졌어요. 가족들도 괜히 쉬쉬하며 아버지 눈치만 살피게 되고.. 아버지는 제가 말수가 줄어들었다고, 기죽지 말라고 하시면서도 집에 계시다 보니까 그런지 잔소리가 심해지신 것 같아요.
저는 아버지 자존심 상하실까봐 말도 제대로 못 붙여서 그러는 건데 아버지는 "내가 돈을 못 벌어오니까 아버지가 초라해 보이는게 아니냐, 그럴 필요없다. 기운내라" 는 말만 되풀이 하세요. 저는 아버지가 더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정말 답답해요. 그리고 사실 학교갔다 와서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 것도 너무 어색하구 싫어요. 마음이 무거우니까 집에 들어오기가 싫어지더라구요. 그러면서 한편 아버지를 보면 너무 불쌍하고 안 된 마음도 생기고..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직하신 후 놀고 계시는 아버지 보기가 민망해요.
아이구 저런, 얼마나 힘드세요. 지금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이 사실 IMF라는 위기로 하루하루 살기가 참 어려운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님 집에 이런 일이 생기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님의 심정이 정말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집 분위기가 당연히 무거워졌겠지요. 그리고 아버지 눈치도 보게 될 거구요. 말 한마디 걸기도 힘들구요. 근데 아버지는 그걸 또 다른 식으로 오해하시니.. 참 답답한 노릇이구요. 자,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있을 수 만은 없잖아요? 이러한 위기를 잘 이겨내면 더 힘든 일이 **님 집에 생기게 되었을 때 더 현명하고 꿋꿋하게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두가지 측면에서 **님께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루요, 지금의 상황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힘들어서 피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 충분히 공감이 되는데요. 그것을 피하지 마시고 그냥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피하면 피할수록 아버지의 오해도 더 깊어질 것이구요.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다시 되돌아오기는 더 힘들어지거든요. 물론 집에 와서 아버지 모습 보기가 민망하고 싫을 겁니다. 하지만 '그래, 우리 아버지가 실직하셔서 집에 계시는구나, 적적하셨겠다' 라고 그냥 생각해 보세요. 아버지도 나름대로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책임지기 위해 틀림없이 노력하고 계실 거랍니다(예를 들어서 다른 직장을 구하거나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 하고 계시겠죠). 예전처럼 아버지를 굳게 믿고 기다리는 것이 가족들이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일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집에 계시는 아버지가 적적하게 무기력하게 보이기보다는 새로운 일을 준비하느라 고민하시는 또 하나의 모습으로 다가오겠지요.
둘째루요. 혹시 그동안 **님의 아버지가 평소엔 강해 보이고 무엇이든지 잘 하시는 전지전능한 분으로 혹시 생각하지는 않았나요? 그보다는 아버지도 **님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그냥 '한 사람'이라는 마음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때로는 **님도 실수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구요, 그리고 힘들면 의기소침해지고 기운빠지는 때도 있으시지요? 위기가 닥칠땐 우왕좌왕 하지 않습니까?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도 한 인간인 이상 힘들고 어렵고 외롭고 그렇답니다. 그러니까 이럴 때일수록 가족의 이해와 사랑, 협조가 아버지에게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지금이 아버지에게 드리지 못했던 자식으로서의 관심과 사랑을 선물로 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합니다.그냥 '아버지도 기운 내세요. 저도 기운내고 열심히 생활할께요' 라는 메시지를 편지 등으로 전해 드리는 것도 아버지에게는 정말 큰 격려가 될 것입니다.
**님,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을 아시지요? 아직 나이는 어리겠지만 어려움을 이겨내는 삶의 지혜를 일찌감치 배우게 된 것이 어떻게 보면 **님의 인생 전체로 볼 때에는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