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은 무책임해요. 나한테는 밖에 나가서 욕먹을 짓 하지 마라, 부모 얼굴에 먹칠하지 마라, 남부끄럽게 성적은 왜 그 모양이냐 등등 볶아 대시지만 정작 당신들은 하시는게 없어요.
날마다 부부싸움에, 지저분한 집안꼴 하며, 세상 원망만 하시고 집에 틀어박혀 있기만 하시니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기도 창피해요. 싸우시는 모습을 보고 학교에 가면, 왠지 친구들이 다 알아버릴 것 같고, 뒤에서 흉보는 것 같아서 친구들과도 서먹서먹하게 지내게 돼요. 차라리 공부를 포기해 버리고 망나니가 돼서 부모님 얼굴에 먹칠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예요.
우리 부모님은 무책임해요.
날마다 얼굴을 대해야 하는 부모님한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으니 정말 마음이 불편할 것 같군요. 여러 가지 가르치시려는 부모님의 의욕에 '잔소리'까지 듣게 되니 집에 있는게 싫고, 더구나 부모님의 불화나 패배적인 태도를 남들이 알면 창피해서 두려운 마음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00님은 성실하게 자기 일을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 대견합니다. 00님에게는 자기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살아가려는 마음이 있는 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공부를 포기해 버리고 망나니가 돼서 부모님 얼굴에 먹칠하고 싶은 순간'을 느끼지도 못한 채 그렇게 되어버렸겠죠.
그래서 선생님은 00님의 잘 살아가려는 소중한 마음을 어떻게 하면 지켜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 게 됩니다. 부모님 때문에 집에 있기 불편한 마음과 부모님 때문에 창피한 마음, 그리고 부모님 얼굴에 먹칠하고 싶은 마음, 이 세가지 마음이 00님의 어려움인 것 같습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려움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기를 성장시키는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집에 있을 때 부모님이 불편하게 하시면, 과감하게 집을 떠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단, 어디로 떠나느냐, 또 얼마간 떠나느냐가 중요합니다. 가끔 청소년들 중에 집에 있기 불편하다고 해서 집보다 못한 곳, 집보다 더 불편한 잠자리에서 지내기를 선택(?)하는 청소년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떠나되 자기에게 약이 되는 곳으로, 떠나되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만 떠나는 방법을 찾아야 겠지요.
부모님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면, 어떤 상황에서 그러시는지를 잘 분석해 보세요. 그리고 가장 심하신 시간에는 다른 곳에 가 있으세요. 공교롭게 식사 때 그러신다면 다른 곳에 가 있다가 식사시간을 피해 들어온 후 부모님이 안에 들어가 계실 때 들어와서 얼 른 밥을 먹는 것입니다. 식사 시간 이외의 시간에 그러신다면, 그 시간 동안을 밖에서 보내는 것입니다. 부부싸움 직후에 그러신다면 부부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문을 걸어 잠그고 잠을 자 버리든지, 친구집을 잠깐 방문한다든지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특히 심하신 시간대를 골라서 집밖에서 자기에게 약이 되는 장소를 물색하여 시간을 보내세요. 그 짧은 순간 그야말로 멋진 '가출'을 하는 것입니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기쁨도 슬픔도 가족과 함께 나누게 됩니다. 가족들은 기쁨과 슬픔을 나누기에 가장 좋은 사이입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슬픈 일을 겪으면 위로하며 함께 있어주는 일은 가족이 해줘야 할입니다.
00님이 부모님이 바람직하지 못하게 생활하고 계신 것 같아 창피하다고 생각한다면, 00님에게도 똑같은 생각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부모님이 싸우실 때나 아버님이 직업을 갖지 못하고 집에 계실 때, 오히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싸우는 당사자들, 자식들 앞에서 싸움이나 하고, 변변한 직업도 갖지 못한 채 집안에서 세월을 보내야 하는 모습 본인들의 처지를 깨닫지도 못한 채 세상 원망이나 하고 있는 모습 얼마나 안쓰럽습니까? 00님자신의 체면을 생각하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부모를 바라보세요. 위로가 필요한 분들입니다.
부모님은 아마 자신들이 어떻게 표현하더라도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속마음을 00님이 알아줄거라고 기대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00님이 잘 되기를 바라고 계시고요. 해주시는 것에 비해서 자식한테 바라는게 너무 많으시다구요?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누구에게 무언가를 해주기 보다는 받고 싶은 마음을 크게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 심각한 건 자기가 받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화가 나면 합리적으로 표현해 보세요. 합리적으로 화를 표현한다는 것은 내가 화를 냄으로 인해서 결국은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화가 많이 나다보면, 엉겹결에 부모님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부모님은 더 심한 말씀을 하시곤 합니다. 일기장을 하나 마련해서 속시원히 부모님 험담을 해보는 것도 손해를 보지 않는 방법입니다. 문을 닫고 들어와서 베개를 쾅쾅 쳐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구요. 그러다가 00님과 부모님의 기분이 가라앉았을 때를 골라서 "부모님, 그 때는 저도 막 공부하려던 참이었어요, 조금 섭섭한 마음이 생겼었어요"라고 완곡하게 말씀드리는 것 등 아이디어를 총 동원해서 손해보지 않고 그때 그때 화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부모님도 한 인간이고, 00님도 한 인간입니다. 허점이 없을 리 없습니다. 이제 00님도 청소년이 되었으니, 어른들이 완벽한 것이라는 전제는 어느 정도 거두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우리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정할 수 없는 은혜와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분이라는 믿음, 그리고 우리보다 훨씬 더 시간을 세상을 살아오시면서 쌓아오신 지혜 등 여러 가지로 인해 존경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모님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해 보세요. 00님의 달라진 모습을 보신다면 부모님께서도 분명 달라진 태도를 보이실 것입니다. 힘내세요.
